이창동의 <시>를 보았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에 이어 그의 작품 <시>를 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알지만, 외면하고 있는 우리 삶의 한켠의 모습을 참 잘도, 꼬집어 드러내준다 생각했다. 그의 영화를 볼때면, 우리가 외면한 그 씁쓸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던지라, 이창동의 새 영화가 어떨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의 새영화 <시>의 예고편을 봤을땐, 윤정희의 고운 얼굴과 '詩'라는 소재와 맑고 청아한 바람이 느껴져 뭔가 삶의 아름다움을, 아주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나 했다. 아마도, 제목 詩에서 왔던 그 느낌도 무시 못했으리라.
한번, 예고편을 보고나선 그 어떤 평론가의 글도 블로그에 떠도는 누군가의 영화 후기도 읽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러-
국문학을 전공하고 詩를 쓰고 싶은, 문학에 대한 원천적 그림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나이 환갑이 넘어 문화센터에 시를 배우러 다니는 할머니의 삶을 어떻게 아련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극장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첫 장면, 머리에 쿵, 내 마음속에서도 한번 쿵. 아. 역시 이창동이구나. 내 기대 밖의 내용일거라는 직감, 이창동 영화의 연장선일거라는 그 무서운 직감.
보면서 내내 불편했다. 내가 싫어하는 그런 인간의 종류들이 어쩜 그렇게 다 총집합 되었을까? 아이들의 죄책감 없는 성폭행, 성폭행 한 아이가 자살을 한 이후에도 변함없는 일상을 사는 그 아이들, 아이들의 장래를 운운하며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부모들, 사건이 학교 밖으로 새나가지 않기만을 바라는 썪어빠진 교사들. 늙고 병든 몸으로도 색정을 표현하는 늙은 노인. 자기 얘기 외에 다른 사람의 얘기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 아주머니, 뭐하러 시를 배우냐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요만큼도 이해 없는 모습. 정말이지 주변에 너무 많은 인간유형이지만, 애써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한 편의 영화에 전부 다 집합시켜 놓았을까-
성폭행으로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손자의 죄를 무마하는 합의금을 위해, 자신의 성을 파는 할머니. 시는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얘기하면서 아름답지 않는 삶을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 시를 읊는 자리에서 음담패설을 던지는 상황. 시를 배우는 문화센터에선, 계속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찾으라 하면서 영화의 진행은 점점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 문화센터 강사 김용탁 시인의 '더 이상 시를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사라지고 있다'는 말. 결국 이 세상의 삶의 아름다움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상황을 詩를 통해, 보여준 역설의 미학. 영화를 본 어젯밤은 온통 세상의 쓴모습이 비위가 뒤틀려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어렸을땐, 영화속 모습에 분개했다면 30대에 접어든 나는 이제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걸까, 영화속 모습에서 세상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매치되어서 분개도 못하고 내내 마음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하룻밤 자고 난 이 아침, 다시금 이 영화를 생각해 보니, 감독이 얘기하려는 것은, 그런 더러운 세상에서도 양미자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삶은 詩다. 고통 없는 아름다움이 없듯이.
詩, 屍, 豺, 嘶, 試, 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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